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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어 가스펠 장로 교회
Pure Gospel Presbyterian Church
퓨어 가스펠 게시판

10/9/2010
색깔

토요일 아침에 오랫만에 미루어 두었던 교회 웹사이트 정리를 시작했다. 처음 생각에는 그저 몇가지 색상만 바꿔야지 하고 시작한 일이 4시간이 넘어도 끝나질 않는다. 배속에서 꼬로록하는 소리와 함께 나오는 한숨. 이번 주말도 이렇게 가는 구나.

통계학을 전공한 내게 색상을 정하는 문제는 언제나 어려운 이슈다. 색상은 빛이 물체에 반사되어 일어나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는 것은 알지만 단색의 물체를 다른 색상의 물건 옆에 두었을때 언제나 새로운 색깔로 보이는 것은 하얗게 새어가는 내 머리를 긁게 만든다.

예를 들어 밝은 노란색은 파란색과 가까이 있으면 뚜렷하게 보이지만 녹색이나 빨간색 옆에 두면 녹색이나 적색을 띈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이유때문에 색깔들을 화면에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그 화면의 전체적인 느낌이나 주제가 확연히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어릴적 대학에서 사회학 개론 수업을 아주 흠미롭게 들은 일이 있다. 내가 숫자에 억매이는 통계학부생이라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에 대한 이론 자체만으로도 사회학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사회 구조에 대한 기능론과 갈등론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기능론은 사회 구성원 하나 하나가 그 자신의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므로서 사회가 유지된다는 이론이고 갈등론은 그 사회를 이루는 집단간의 갈등에 의해 그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되어 나간다는 논리다.

모든 사회는 기능적요소와 갈등적요소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는 구성요소가 존재해야 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그 사회속에서 소외된 집단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도 쉬운 논리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사회가 소외 집단의 문제를 최소화하면서 모든 기능을 원할히 수행할수 있는 방법. 그것이 각 사회가 해결해야 할 숙제일게다.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를 모든 사회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지만 자본주의는 소외집단이 창출할수 있는 자본을 최소화하고 민주주의는 소외 집단의 규모를 최소화하는 임시 해결책일 뿐이며 이러한 방법들이 소외 집단의 문제를 악화시킬 여지도 많은 것이다.

비교적 적은 규모의 교회를 다니면서 그러한 기능적/갈등적 사회를 자주 생각해 본다. 각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사회적 문제들, 교인과 목사님과의 갈등, 교인들 간의 갈등, 각 일꾼들이 헌신하는 기능들. 이러한 것들이 퓨어 가스펠 교회를 이루어 나가는 걸 보면 파레트의 물감들이 뒤석여 있듯이 천차 만별의 색깔들이 이렇게 저렇게 석여서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 밖에서 봤다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을 색깔도 교회 내에서는 조화를 이루는 색으로 자리 잡혀 있는 가하면 홀로 놓아두면 어여쁜 색도 교회내에서는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는 회색이 되어 있기도 하다. 비슷한 색들이 모여있는 곳에 그 색깔을 가까이 두었을때 오히려 그 집단의 모든 색들이 퇴색되어 보이는 수도 있겠다. 교회 내의 “색깔”들이 화려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집단과는 달리 교회라는 소규모의 사회는 기능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흔하지 않다. 많은 것들이 자발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 만큼 불규칙적인 요소도 많을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수 많은 갈등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교회를 주제로 한 오래된 그림들에 아주 어둡고 침침한 색깔들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추리를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여러가지 불규칙한 색상의 배열 속에서도 나를 항상 놀래키는 것은 교회의 전체적인 색상 배치는 의외로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부분적으로 보면 단조롭고 때로는 어두운 색으로 나열되어 있는 교회라는 그림속에 그리스도라는 아주 밝은 색이 존재하기에 때로는 그 예수 색에 가까이 있는 색상들도 살아나고 더불어 그들 주위의 색상들에게도 밝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밝은 색의 삶과 집단 그리고 밝은 색의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사회 문제의 해결책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2/20/2011
Comment from
안녕하세요! 우연히 방문했다가 올린 글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글을 참 잘 쓰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지난 2월에 퓨어가스펠 교회를 방문했던 한전도사입니다. 그곳의소식이 궁금해서 방문 했다가 신집사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생각에 글을 남깁니다. 미국을 떠나오기전에 한 번 뵙고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그냥 돌아와서 아쉬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종종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올려주시면 이곳에서도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항상 풍성하시길 기도합니다.
4/1/2011
Comment from LEE, TAE-YUNG
신 집사님, 작년 12월에 크리스찬 타임스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있습니다. 신집사님께 무엇을 여쭈어 보고싶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올려 봅니다. 제게 전화 한통화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제게 전화 번호를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나이가 많으나 (70) 목사로서 주를 섬기고 있습니다. 젊어서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했고, 연세대 대학원을 졸업후 삼성에서 전산부장도 하다가 미국에 온지 38년입니다. 그간 은행 전산부에서 약 10여년 일하다가 주의 부름을 받고 특히 원어성경연구를 하다가 셩경 전체를 원에에서 한글로 번역도 했습니다. 동시에 Software 개발회사를 설립하여 26년간 Banking, Bible Software를 개발해 오다가 최근에는 Internet에 기반을 둔 CLOUD COMPUTING으로 방향전환을 하여 APP 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회사를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그린빌 에서... 이태영 목사, XCELSOFT 사장 (864) 278-2833
1/17/2012
Comment from Kaley
This is way betetr than a brick & mortar establishment.
1/18/2012
Comment from hjsjv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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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012
Comment from xtjyw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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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009
좁은 시각과 삶에 대한 태도

글짓기 에피소드

70년대 말 봄이 다가오는 어느날 오후. 철 마다 있는 글짓기 시간이다. 자꾸 창문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쓸 말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서다. 내 머리가 이렇게 비었나? 전혀 소재가 생각 나질 않는다. 평소 몸이 약해 누워있는 시간이 내 인생의 거의 전부인 때라 독서량도 별로 없고 읽어도 추리 소설을 선호하던 나에게 무슨 재료가 있을까마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이 빈 머리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한 거다.. 심한 고민을 했더니 배만 고프다. 집에 가자마자 라면을 끓여 먹는게 어떨까? 라면에 대해 쓸 글은 없을까? 지난번 글짓기 시간에도 백지를 내서 선생님과 부모님의 원성을 독차지 했던 나로서는 또 백지를 내는 것은 옵션이 될수 없다. 옆을 보니 내 짝은 벌써 한 페이지를 다 채워가고 있었다. 보기 보단 독한 놈이다. 어떻하지 그냥 실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지난번 먹었던 욕을 또 다시 들어야하나? 장독에 담은 식수를 장난질 하다 더럽힌 뒤로 엄마는 아직 화를 푸시지 않았는데…

에잇 모르겠다. 나는 엉성하게 잡은 연필을 돌려대며 글을 마구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읽은 글은 없지만 아줌마들이 수다 떠는 얘기나 누나가 틀어놓은 라디오를 통해 들은 얘기들은 많으니 그것들을 대충 써보는거야. 다시 백지의 능욕을 당할수 없다는 필살의 수를 나는 펼치고 있다. 마치 마감에 임박한 기자가 엉터리 기사를 쓰듯 나는 내용보다는 구성에 집중했고 어느 정도 글이 되게 만들어 갔다.

그 글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길거리에 버려져있는 병마개들을 모아서 그것들을 판 돈으로 불우 이웃 성금을 냈다는 이야기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이 멋잇게….

“불우 이웃 성금을 내고 돌아오는 우리들의 눈앞에 저녁 노을이 반갑게 비쳐주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자신이 가증스럽지만 백지 글짓기를 면하기 위해선 어쩔수 없다는 변명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자책감은 금방 사라져버리고 글짓기를 제 시간안에 마쳤다는 자부심이 나를 치켜 세운다. 내게 이런 면이 있다니 놀랍다. 급하니 마구 글이 써지네. 우리 학교 교훈대로 정말 하면 되나봐. 혹시 내가 소설가 재능이 있는게 아닐까? 황당한 생각까지 하면서 가방을 챙겼다.

다음날 아침 담임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신다. 아뿔사, 길거리에 돌아다닐만큼 내가 건강이 좋지 않은 걸 아시니 내가 어제 쓴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라는 걸 눈치채신 게다. 머리를 숙이고 샌님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선생님: “태성이가 어제 쓴 글 아주 감명 깊게 잘 읽었어”

샌님이 강조를 위해 반어법을 쓰시나? 상황 판단이 안되는 나는 계속 머리를 숙이고 있다...지금이라도 이실직고하고 광명을 찾을까?

선생님: “그래서 우리 반에서는 이번 글짓기 대상 후보로 태성이의 글을 추천하기로 결정했어. 자 모두 태성이에게 축하의 박수.”

짝짝짝…물론 내 글은 전교 글짓기 대상으로 뽑히지 못했지만 그 글의 내용으로 나는 한 두가지 선행상을 수상 받게 되었고 급기야 몇 달 후 전국적으로 뽑는 모범 장애아들 중 하나로 선별되어서 일 주일간 여러가지 국가 행사에도 참가했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성공시대는 며칠 뒤 어머니께서 사실을 간파하신 뒤 짧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엄청난 매와 꾸중 그리고 계속되는 고문(?)속에서 거짓말을 아예 못하도록 세뇌 받았고 그후로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통이 나서 망신만 당하는 어머니의 주문에 사로잡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생각하게 하는 것들

거짓말에 대한 교훈 외에 그 사건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내가 글을 쓸때 갖는 자신감이었다. 내 머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 있고 내 몸과 마음은 뇌성마비 덕분에 허약하기 그지 없는 모습에서 바뀌지 않았지만 그 나약하고 한심한 내 인생 속에도 현실이건 상상이건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와 나와 얽혀있는 다른 인생들의 이야기 거리로 내 삶이 가득차 있다는 것을 이 빈 머리로 어렴풋이 알아차린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해야 할게다. 전에 글을 쓸 소재를 찾을수 없었던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이루어 왔던 것들속에서만 쓸 거리를 찾으려고 했던 내 좁은 시야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 개선된 시각을 우리들의 인생에 대한 태도에 맞추어 본다. 우울증이 현대인의 가장 심각한 병 중의 하나인 원인은 사회를 이루는 개개인 자신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가지려하고 이루려는 집착이 난무하고 합리화되는 이 사회속에서 각 개개인은 자신의 존재라는 감옥에 갇혀 발버둥치며 신음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것과 이루어 온 것들만 고려한다면 허무하고 보잘것 없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게다. 하지만 그 존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이루어지는 일들을 고려하고 산다면 그 삶은 보다 풍성한 감사의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마리의 일벌이 할수 있는 능력과 일은 별 볼일 없지만 그들이 모여 여왕 벌과 만드는 벌집은 그들 자신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생태계에도 유익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벌집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하는 일벌 중 하나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자신이 이루는 업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만을 추구한다면 어떤 일들이 발생할까? 재미있는 우화집이 만들어질 것 같다.

에베소서는 각각의 성도가 취해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

내가 주제넘게 성경을 풀거나 설명할 생각은 없지만 그 몇 마디의 구절 속에 우리를 참 자유케하는 진리가 있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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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2009
짧은 인생 이야기

1989년 서울

칠흙같은 캄캄한 어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팔, 다리, 손가락 내몸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생각도 없다 그 암흑의 공간에 나는 철저히 소멸되있다. 난 이곳에 다시 올수 없어! 조금만 더 살고 싶다! 오늘도 몸서리를 치면서 잠을 깼다. 꽈당. 신문지가 널부러진 독서실 바닥에서 일어나며 발을 헛디뎌 의자를 넘어뜨렸다. 불꺼진 어둠속 여기저기서 잠을 깬 쌍소리들이 뱉어져 내귀에 묻는다. 화장실 문을 열자 삶의 찌꺼기들의 잔상이 내 얼굴을 갈긴다. 물에서까지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데 배가 고픈걸 보면 아직 살아있나보다. 막상 휴학을 했는데 할 것이라곤 카이스트 입시 준비밖에 없다니 한심하다 인간 신태성.

난 왜 태생 전의 세상을 기억할까. 짓누르는 암흑이 바로 앞에 있는 듯 다시 숨을 쉬기가 어렵다. 머리를 흔들어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뚜렷한 그 이미지. 뇌성마비 장애자에다 정신까지 이상한 걸까? 뇌의 한쪽이 상했으니 나머지도 성한게 이상하긴하지. 날이가면 갈수록 삐뚤어져가는 이몸으로 얼마나 살까? 1999년에 세상이 멸망한다고 했지. 10년 정도 남았으니 그때까진 살고 싶다. 잠을 청하기가 무섭다. 아니 그 죽음의 암흑이 무섭다. 책상으로 돌아와 경제학 문제집을 열어본다.

사람1: “나 원래 사시 공부하던 사람이요.”

사람2: “그래서요?”

사람1: “허리가 안좋아서 의자 좀 바꾼게 뭐가 그리 기분나빠?”

사람2: “이 사람이 어디서 반말이야. 여기 당신 혼자 공부해?”

사람3: “조용히 좀 합시다”

멀지 않은 곳의 목소리들이 더 커지지만 그 소음이 자장가 되어주며 졸음이 몰려온다. 이번엔 편히 잤으면 좋겠다. 죽음의 기억을 잊고 싶다. 곁에 있어줄 사람이 그립다. 내일은 친구들과 술한잔 할까보다. 아니다 돈도 없는데 선배가 소개해준 사람이라도 만나 일거리를 찾아볼까보다.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한다.

1999년 털사

차에서 내리자마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차문을 세차게 닫고 아파트 현관문을 걷어 찼다. “%&%$^$$#@*##” 미국이라 한국말로 욕하긴 편하지만 어딘가 아무도 살지 않는 산속으로 들어가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싶다. “아아아~~악” 아파트 문을 열고 전화기의 리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옷 입은채로 누워버린다. “오빠 나야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똑같은 레퍼토리가 끝나기도 전에 디지털 티비 볼륨을 높인다. 미안하다만 난 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야. 너와 사랑게임이나 하며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하루 빨리 나이팅게일 신드롬에서 헤어나길 바란다. “이규자 목삽니다. 지난주 교회에 오지 않아서…” 사람 얼굴이나 볼까하고 아는 분의 소개로 간 교회가 성도 몇사람 없는 개척교회다. 저 목사님은 말씀과 기도로 머든지 된단다. 심히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암튼 골라도 난 너무 잘고른다. 찬장에서 위스키 잔을 꺼낸다. 금테가 둘린 위스키잔. 박사 졸업 선물이라고 누가 줬는데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 친구중에 하나일게다. 혼자 있으니 술도 잘 마셔지지 않는다. 억지로 석잔을 마셔본다.

그저 옆차가 급하게 추월해 간게 왜 그리 화가 날까? 오늘도 모듈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고 부사장의 칭찬을 독차지했는데 내 마음은 쓸쓸하고 허전하기만 하다. 외롭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면 더 외롭다. 내가 원하던 직장. 내가 원하던 연봉. 모든 일들이 다 순조롭게 진행되는데 내 마음은 날카롭게 변하고 있다. 아니 더러워져가고 있다. 영주권 받기가 이제 어려워진다고 하던데 미국에서 직장을 얻은게 실수일까? 지금이라도 다 팽개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건 어떨까? 연구직을 포기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8년의 결과가 결국 이런것 밖에 되지 않는가? 예언자가 말했던 세상의 종말이 올해인데 어떻게 된건가? 종말은 커녕 세상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술기운이 전혀 도와주질 않는다. 죽음이 나를 부르고 있다. 짓누르는 어둠의 공포. 또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위스키를 병채로 마신다. 이제 몸서리칠 기운도 머리를 흔들 힘도 남아있지 않다. 손가락에 머리카락 하나도 들 여력이 없다. 죽음이 항상 동행하는 내 삶. 살아있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벌레같이 많은 사람중의 하나인 내가 살건 죽건 성공하건 실패하건 무슨 상관인가. 내가 이미 죽어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지쳤다. 죽음을 거부할 의지는 커녕 숨쉴 힘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조금 더 살고 싶다. 눈에서 물이 한방울 떨어진다. 그리고 한마디의 숨소리가 목구멍에서 가늘게 새어나온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술기운이 이제야 구실을 하는지 눈앞이 가물가물해진다.

2008년 아틀란타

아주 멀리서 기차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눈이 가볍게 떠지는 걸보면 몸이 피곤하지 않은가보다. 그래도 좀 더 누워있자. 5시에 맞춰놓은 셀폰 알람이 때마침 귀를 간지럽힌다. 저녁형 인간인 내게 새벽기도는 언제나 넘기 힘든 고개다. 주섬 주섬 옷을 입고 가라지 도어 오프너를 누른다. 차에 시동을 켜고 기어를 리버스에 놓으며 계기판을 본다. 시계는 5시 20분. “매일 늦는게 습관이야 습관!” 새벽 예배 시작이 5시30분이니 목사님의 핀잔을 면할수 있겠다. 어쩌면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디오에서는 대통령오바마의 연설중 한도막이 흘러나오고 있다. 50년전에는 투표권도 없었던 흑인들. 올해초만 해도 그 속에서 대통령이 나오리라곤 그들도 예상하지 않았단다. 1999년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지만 지금 2008년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오늘도 목사님의 아침 설교는우리 성도를 야단치시듯 엄중한 목소리로 말씀을 선포하신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 관중 모독이라는 연극이 생각난다. 연극의 마지막 부분에 기존의 연극의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로 연기자가 관중들에게 욕설을 퍼붇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만으로 뱃속에서 웃음이 새어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는다. 이 성도 모독적인 말씀 하나 하나가 내 메마른 감정이나 양심을 가차없이 도려낸다. 그 “아픈”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때때로 욱하고 올라오는 무언가를 느낀다. 내가 온전한 사람 되기는 아직 멀었다는 신호다. 이제 들은 말씀을 되새기며 기도하는 시간이다. 성가와 방언 그리고 통성 기도로 내 안의 더러운 것들을 고백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오클라호마 털사에서 조그만 교회의 담임 목사로 계신 이규자 목사님을 만나뵌 것은 지난 1999년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 개인주의. 욕심, 허무, 그리고 절망. 그것들로 몸과 마음이 극도로 약해져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해 목사님의 끊임없는 설득과 말씀을 통해 난 처음으로 성령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 많은 눈물과 회개가 나올수 있다는 건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디. 그리고 “작은자에게 한 것이 주님에게 한 것이라”는 마태복음 25장40절 말씀을 받았고 그떄부터 목사님의 작은 교회를 섬기기 시작했다. 섬겼다는 말은 좀 그렇다. 교회에서 예배와 행사등을 통해 말씀과 기도 그리고 봉사로 나를 치료했으니 입원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그 후 교회는 조지아로 옮겨지게 되었고 난 2006년에야 조지아로 이사오게 되어 다시 이 교회를 “섬길 수” 있게 되었다.

향연이라는 글을 보면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욕구가 사랑이라고 했다. 비교적 괜찮다는 연봉을 받고 있던 오클라호마의 일자리를 그만두고 조지아로 "무작정 상경"한 이유는 내 남은 인생을 하나님 안에서 아름답게 마치고 싶어서였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곳에 와서도 직장도 얻게 되었고 건강도 좋아졌지만 내가 가장 감사하는 것은 내가 어둠 속에서 욕심과 미움의 종으로 더이상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젊은 시간을 괴롭히던 그 죽음의 어두움은 이제 내가 갈 곳이 아니다. 그 어두음은 항상 내 옆에서 나를 유혹하고 조롱하고 있지만 내겐 밝고 아름다운 주님의 세계가 준비되어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알려주셨고 나는 오늘도 그것을 믿으며 주님을 사랑한다.


3/9/2009
Comment from
집사님 인사가 늦었지요? 홈페이지 바꾸니깐 신선하고 참좋아요 날로 안팎으로 발전하시는 집사님의 모습 도전이 되네요. 집사님의 글 계속 연재해주세요. 이미 집사님 팬 한명 확보하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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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2008
퓨어 가스펠 게시판

교회 소식을 효율적으로 알리기위해 게시판을 만들었습니다. 문의 사항이나 알리실 소식이 있으면 커멘트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검토한 후에 올바른 서식으로 올려드리겠습니다.

또한 미적 감각이 부족한 엔지니어가 이 웹사이트를 만든 관계로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많을줄로 압니다. 여러가지 권하고 싶으신 사항이 있으면 또한 커멘트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게으른 웹지기지만 앞으로 주마다 컨텐트를 업데이트하려고 합니다.


6/3/2009
Comment from brother
안녕하세요? 만드신 홈페이지에 정성이 느껴집니다. 홈페이지의 모든 부분을 손수 다 만드신 것 같은데 아시겠지만 요즘에 많이 생겨난 framework를 쓰시면 더 손쉽게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drupal, zend, wordpress 등등 opensource 나 free인 것들이 많습니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글 남깁니다.
7/7/2009
Comment from 웹지기
Brother 님, 웹사이트에대한 조언 감사드립니다. 전에 오픈소스 패키지를 써봤는데 세큐리티 공격이 될만한 홀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아예 제가 시간나는대로 ASP.NET Framework을 기반으로 만들었습니다. 디자인 능력이 좀 부족해서 미적으로는 좀 떨어지지만 기능적으로는 프렉서블해 유지가 쉽더군요. 말씀하신 시스템들 참고로 하겠습니다.
9/10/2011
Comment from 김한상
목사님 주안에서 평안하시지요? 계시판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목사님께서 김정희 목사와 박명신전도사의 연락처를 물으셔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김정희 목 사 / 010-4620-3257 박명신 전도사 / 010-8410-6096 명절에 목사님과 퓨어가스펠교우들에게 평화가 넘치시기를 바라며.... 대전에서 김한상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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